대학생과 직장인 사이

대학생과 직장인 사이

Summary:

오늘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창피해서 지울지도 몰라요.


종강하면 OO해야지!

대학교를 졸업하면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다. 이번 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면 대학생활도 끝이었는데 유난히 길었던 시험기간동안 하고 싶은 것들을 잔뜩 써뒀다.

이를 테면 Madeleine Love 악보 구해서 전주부분 건반 연습하기, 씬디 티켓라운지에 스티커 두고 또 가져오기, 참아온 어플 업데이트, 여의도 한강 그늘에 돗자리 깔고 3시간 동안 고흐 읽기, 플랭크와 스쿼트, 뷰민라 복습, 썸머매드니스 취켓팅, 메모장 정리, 피들리, 블로그 리스트 정렬 변경, 시코르 탐방, 하루종일 코딩만 하기, 포트폴리오 수정, 1 Page 이력서 제작, 링크드인 프로필 만들기, 액정 깨진 아이폰 청산하기, 올해 상반기 커밋 로그 만들기, 쌈마이웨이 정주행, … 등등.

이 중엔 종강 전에 이미 해버린 것도 있고 종강하고 나서 없었던 일처럼 잊어버린 것도 있다. 어쨌든 지난 21일이 마지막 기말고사날이었고 그 전공 시험을 끝으로 내 5년 반 동안의 대학생활은 끝났다.


기적

사실 종강 전 날 인턴 최종합격 메일을 받았다. 이렇게 멋진 회사에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운이 좋아서 합격했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합격 당일, 그 날 하루는 마냥 행복했다. 바깥 풍경은 어찌나 예쁜지, 시험을 보는 내내 실실 웃느라 혼났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가는 인재가 된 것 같았다. 면접 때 뵈었던 대단한 지원자분들 중에 내가 선택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으며 혹시나 메일이 잘못 온 게 아닐까, 정정메일이 올까 두려워 메일함을 다시 클릭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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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학생이라는 단어를 떠나보냈던 것 같다. 남아 있던 몇 개의 기말고사도 금방 끝나버렸다. 뭐랄까, 분명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빨리 대학생활이 끝났으면, 학생 타이틀 좀 떼고 직장인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진짜 끝나니까 마음이 달랐다. 이 기분이 뭔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합격하면 종강하는 날부터 입사일까지 약 10일 동안을 천국처럼 보낼 줄 알았다. ‘큰 회사 입사가 보장되어 있고 + 난 젊고 + 알바비 모아둔 것도 많고 + 자유시간은 길고!’ 이런 최적의 조건을 갖춘 휴가가 내 인생에서 또 언제 올지 모르니까 미친듯이 즐길 생각이었다.

근데 마지막 기말고사 시험이 끝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현타가 왔다. 너무, 정말 너무 기쁘다가도 한없이 주눅들게 되고 불안했다. 조급해지고 조바심이 났다가도 무기력해졌다. 학생이었기 때문에 봐줄 수 있었던 것들, 학생이라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당장 내일부터 사라지고 이젠 진짜 실전이라는 생각, 압박감, 열심히 하는 건 그만하고 정말 잘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들을 했다.

그 생각들을 오늘까지도 하고 있다. 기적이라고 언제나 좋고 행복한 건 아닌가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게 가능할까

대학교에 들어와서 경험한 세상은 수능이 끝나고 수능이 갓 끝난 수험생이었던 내가 상상한 것과는 너무 달랐다. 그 때 내가 알던 세계의 열 배 이상, 아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었다. 당시에 꿈꿨던 내 모습, 직업, 전공, 만나는 사람들, 어느 하나 제대로 예견한 게 없었다. 이랬던 내가 25살인 지금이라고 5년 뒤를 예상할 수 있을까?

잘하고 싶다는 압박감이 자꾸 막연한 미래를 걱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실수하면 안된다면서 나를 조이니까 지금 내게 주어진 일에도 제대로 몰입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지금 시작점에 있는 거니까, 지금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면 되는 거다. 학교 안에서나 할머니 취급을 받았지 학교 밖으로 나갈 때마다 내가 막내였으니까!

(아니, 근데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으면서 머릿속으로만 왜 이렇게 바쁜 거지? 언제나처럼 난 먼 미래를 맞출 수 없을테니 오늘 오후, 내일 뭘 하면서 날 채워나갈지를 고민하면 되는거잖아. 많이 심심한가 보구나.)


‘학생’

연초 파이썬 스터디에서 내 소개를 할 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이 있었다. 내 전문분야로 날 소개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다른 분들은 다 ‘OO 회사 소속’ 혹은 ‘OO 업무를 하고 있다’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는데, ‘전 아직 학생입니다’로 소개를 시작하는 내가 초라해보인다며 한 마케터님께 털어놓기도 했다. 그 때 마케터님은 자신은 정반대로 생각했다면서 어디 가서 내가 학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냐고 얘기해주셨다.

마케터님께서 어떤 의도로 말씀해주신 거였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학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이 이렇게 큰 것일거라곤 몰랐다.

아무것도 아니던 우리의 시절, 그래도 밝게 빛나던 우리의 밤. 크.



긴장은 하되 쫄지 않기

실전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와닿는 순간이 있었나. 학교가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였다면 이젠 더 큰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학교에선 학생이니까 봐줬던 그 모든 것들이 사회에선 사라질 것이다. 진짜 실전이다.

근데 솔직히 내가 ‘학생이 좋다, 학생이 아니게 되는 게 아쉽다’ 하지만 누가 나한테 ‘그럼 대학원 갈래?’ 하면 절대 지금 안 갈꺼다. 껄껄. 학생 그만하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다녔으면 학교는 그만 다닐 때도 됐다. 직업이 학생이 아니어도 언제나 배울 거고 정 필요하다 싶으면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원에 갈 수도 있으니까.

긴장하는 건 좋지만 쫄면 안 된다. 그리고 이게 내 무기 아니었나. 자신감과 여유(있는 척 하기)! 시작하기 전이 무섭지 막상 시작하면 잘 해낼 것이라는 걸 안다.

학교 밖에서도 난 클 것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 믿는다. 언제나 그렇듯, 난 거기까지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는 새 상상할 수 없던 멋진 일을 해냈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졸업해서도, 직장인으로 새출발을 해도 나를 잃지 않기를! 조바심은 오늘까지만 마음껏 갖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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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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